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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

으으윽1998 2022. 12. 25. 00:41

배구 여제 김연경

 

 

1. 김연경 선수에 대해서

 

출생 : 1988년 2월 , 경기도 안산시

신체 : 192cm, 72kg

포지션 : 아웃사이더

 

2. 김연경의 어린시절

 

1988년 경기도 안산에서 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빠른 88생으로 1987년생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6살 위인 큰 언니가 당시 배구선수였는데, 김연경은 큰언니를 따라서 초등학교 4학년인 1997년부터 배구를 시작하였다. 부모님은 큰언니가 배구 선수를 하면서 혹독한 훈련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막내딸인 김연경이 배구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연경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구에 대한 열망으로 배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때는 142cm로 또래 선수들보다 키가 작아 세터를 맡았다고 한다. 

중학교 입학할 당시 키가 150cm도 되지 않아 키에대한 컴플렉스가 있었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은 단체 훈련이 끝나면 밥먹고 쉬었지만 김연경은 혼자서 공을 들고 체육관에서 나가 놀았다고 한다. 특히 남자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특이한 점이 있으면 혼자 연습하였고, 성격도 쾌활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될때까지 170cm가 되지 않아 벤치 맴버로 전전했다. 출전할때도 세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이때 김연경은 배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님과 김동열 감독은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11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 했고 잘때도 공을 안고 잘정도였다고 한다.

 

한일여고로 진학했는데 초반에는 리베로 전문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하교 3년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가 자라면서 공격수 포지션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받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때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2004년 청소년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05년 U-18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본선 득점 2위, 공격선공률 7위로 돌풍을 일으켰다. 2005년 그랜드 팸피언스컵에서 바로 성인팀에 합류하였다. 

 

김연경은 프로 입문전부터 고교 무대를 평정했고, 여자 김세진아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이러한 모습덕분에 프로 관계자들은 김연경에게 관심이 많았다. 2005년 흥국생명은 그해 꼴찌를 하게 되었고, 1순위 지명권을 갖게 되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지명하였고, 등번호 10번을 부여하였다. 

 

 

프로 데위 이후

 

1. 흥국생명 (2005~2009년)

 

김연경은 흥국생명에 입단하여 4번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 3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그리고 유일한 통합우승 2연패 신화로 팀을 이끌었다. 개인 정규 MVP3회, 챔피언 결정전 MVP 3회 , 신인상 1회, 공격상 3회, 서브상 2회, 라운드 MVP4회, 그리고 한일 TOP 매치 MVP 1회 수상하였다. 

 

2. 2009년 일본 진출(2009~2011년)

 

흥국생명의 리즈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캐사키 유닛 소리를 듣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외국에서 뛰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김연경도 외국 리그 진출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2009년 외국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김연경은 이탈리아나 일본에서 뛰고 싶어했다. 이탈리아 한구단은 흥국생명 측에 5억원 가량의 연봉을 주고 김연경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김연경은 본래 이탈리아에서 뛰고 싶었지만 일본에서 배울점이 많을 것이라는 의견속에 흥국생명 자매팀이었고 일본 JT 마블러스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연봉도 4억원을 준다고 약속을 하였다. 

 

김연경은 JT 마블러스의 에이스이자, 일본 V 프리미어리그의 최고의 용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김연경은 팀의 창단이래 첫우승을 이끌었다. 

 

김연경은 임대 이적이란 신분을 갖고 있었고, 일본에서 시즌이 끝나면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다. 2010-11 시즌에는 일본에서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여 시즌이 조기 종료되었다. 김연경은 한국으로 일찍귀국하게 되었고, V-리그와 맞물리면서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출전 시키고 싶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김연경은 한달간 휴식을 취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김연경은 일본에서 최고의 용병으로 인정받으며 JT 마블러스를 챔키언 자리 올려 놓았다. 김연경은 이제 유럽리그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2011년도에 세계 최고의 리그로 급부상하고 있는 터키 리그로 자리를 옮기고자 하였다. 

 

여자 배구 무대에 있어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의 하나였다. 김연경은 그곳에서 얼마나 적응에 잘하고 성공할지 불확실하여 페네르바흐체와 계약을 1+1로 하였다. 

 

페네르바흐체에서는 일본에서 받은 연봉의 2~3 정도였으며 아파트, 차량, 통역도 다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3. 터키 페네르바흐체 (2011~2017년)

 

김연경은 세계 여자 배구, 리그중 최고의 레벨로 평가 받은 터키 리그에서 6년간 무려 7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간판스타로 활약하였다. 김연경은 용병을 넘어서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대우를 받게 되었고, 구단과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2011-12시즌 :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MVP수상, 세계 최고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2012년 흥국생명과의 이적 파동이 일어난다. 김연경은 일본으로 이적할 당시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방식을 이용하여 이적하게 되었다. 김연경은 제대로 신분 정리가 되지 않은채 터키로 이적하게 되었고, 흥국생명 측에서는 김연경의 귀환을 간절히 원했다. 

 

이적파문은 쉽게 말해 선수의 '자유지거의 권리'와 구단의 '선수 운영의 권리'가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2년이 넘는 기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사건을 개기로 김연경은 재판기간동안 이적 예정된 팀으로 옮기지 못하게 되어 선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흥국생명은 비호감 구단으로 찍혀 팬들에게 오랫동안 지탄을 받게 되었다. 

 

2014-15 시즌에 김연경은 이적분쟁이 마무리 되고 페테르바흐체와 재계약하면서 경기에만 집중할수 있었다. 첫 리그 우승과 개인 3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2016-17 시즌에는 기적의 골든셋과 두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페테르바흐체 구단은 규모가 컸고, 열정적인 팬들이 많았다. 특히 김연경을 매우 아끼고 좋아했으며, 서브를 넣을때마다 '킴, 킴, 킴'을 외치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4.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2017~2018년)

 

 자신의 20대 후반을 페네르바흐체에서 보냈고, 2017년5월에 중국으로 이적하기로 결정하였다.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와의 계약은 1시즌으로 중국시즌이 짧고, 한국과 가까워 국가대표로서 시간을 좀더 보낼수 있다는 장점으로 옮긴것 같다. 

 

중국 수퍼 리그에서도 김연경은 진가를 발휘하였고,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상하이 팀은 17년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5. 터키 엑자시바(2018~2020년)

 

김연경은 중국 리그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체 터키 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페네르바흐체가 김연경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히했지만, 당시 김연경은 임금체불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곳에 복귀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페네르바흐체는 아직도 새로운 스폰서를 잡지 못했다. 때문에 김연경은 엑자시바로 옮기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탁월한 리더쉽을 인정받아 팀 2년차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2019-20시즌 주장직에 선임되었다. ㅋㄹ럽 주장을 맡은 건 김연경의 커리어 중에 최초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리그 중단과 국내복귀

 

2020년 2월부터 코로나가 유럽을 덥치면서 많은 스포츠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김연경은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얻은 복근 부상으로 한달 가까이 결장을 하게 되었고, 코로나로 인하여 리그 용병들이 하나둘씩 자국으로 복귀하였다. 김연경도 2020년 4월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때 엑자시바시와 계약이 종료되었다. 김연경은 갑작스럽게 국내 복귀를 취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샐러리캡이었다. 여자부 샐러리캡은 23억인데 흥국생명은 이미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에게 연봉 10억원을 지급하였고, 김연경 복귀시 최대 금액인 7억원이었다. 이들 금액만 17억원인데 흥국생명이 김연경과의 계약을 위해 다른 선수들의 방출이나 연봉 삭감등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국내여론은 찬반으로 나뉘었고, 결국 찬성이 조금더 우세하여 국내 복귀하기로 하였다. 김연경은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리그 일정이 불투명하고 올림픽 준비를 위해 국내복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연봉도 3억5천만원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2020-21시즌은 다사다난했으나 건재함을 과시했고 정규리그 MVP로 결실을 맺었다. 

 

2021년 김연경은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와 계약을 마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연경은 FA자격을 얻기 위해 흥국생명에서 1년을 더 뛰어야 했지만 다사다난했던 흥국생명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임의탈퇴로 분류되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끝난후 해외에서 활동하지 국내로 복귀할지 저울질을 하던중 6월 중순 국내 복귀를 결정하고 연봉 7억원에 흥국생명으로 복귀하게 된다. 2022년 KOVO컵에 참가하면서 아직 건재함으로 보여주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